
그 옛날에 썼던 '주말일기'라는 글의 후속작

월요일
평창으로 일을 하러 감
전날에 두통이 심해서
잠을 거의 못 잔 채로 포터를 탔는데
그리 피곤한데도 시트가 너무 불편해서 잠이 안 오더라
아마 내 기억으로 평창은 처음 가본 곳인데
정말 추웠다
서울 기온만 보고 옷을 다소 안일하게 입고 갔다가
큰 화를 봤음
이날 현장은 작은 중학교였다
정말 작았다
고작 삼 층짜리 건물이었다
3학년의 한 교실에서 작업을 했는데
한 학년에 고작 네 반이 전부더라
지방이라 그런 건지
정말 저출산의 현실이 코앞에 다가왔던 건지
어느 쪽인진 잘 몰라도
그 광경이 참 쓸쓸해보인다는 생각을 했다
학생들은 교복 대신 자율복장을 입고 있었는데
작업하는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해줬다
그게 참 고마웠다

화요일
당근으로 나눔을 했다
원래는 팔고 남은 앨범 하나만 주려 했다가
얘기를 나눠보니 활동중단 후로 입덕한 늦덕이라기에
어차피 나한텐 짐이고 팔리지도 않는 거
집안에 있던 굿즈들을 싹 긁어다 줬다
그렇게 만난 상대방은 앳되게 생긴 고딩 남자애였다
어찌보면 짬처리인데... 참 고마워하더라
윈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
근데 도대체 어쩌다
활동중단 시기에 입덕을 한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니
지난해 같은 반 친구가 버디였고
그의 꾀임에 따라 덕질을 시작했다는 모양
애들 매력 아직 안 죽었네 싶더라
예원이랑만 해도 열 살 차이가 나는 사람을...
아무튼 내가 18년 초여름 쯤에 입덕을 했으니
벌써 거의 칠 년 가까이 된 셈인데
이러니저러니 해도
힘들 때 참 큰 위로를 주었던 사람들이라
마지막까지 고마운 마음으로 보내줬다
이로서 방 정리도 거의 끝난 듯
...아니 어쩌면 아직 더 남아있는 걸지도

수요일
이날도 당근으로 팔 게 있었는데
거래 당사자가 노쇼를 했다
마침 집의 샴푸며 바디워시에 클렌징폼까지
나란히 동나는 참사가 발생해서
다이소로 장을 보러 감
어쩌다 보니 암묵적으로
집안의 욕실용품 담당은 내가 됐는데
그중에서도 구매하는 품목은 항상 정해져있음
투명한 병은 바디워시인데 라벨을 벗겨서 저렇다
온더바디의 '개운한 바디워시'라는 제품
초록색의 심플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에 꽂혀서 사게 됨
무슨 향 무슨 브랜드 이런 정신 사나운 게 싫어
꽤 오래 썼지만 좋은진 잘 모르겠음
싼 맛에 쓰는 듯
그 왼쪽에 있는 건 클렌징폼인데 면도크림 겸용임
세안과 면도를 동시에 하면서 시간 절약이 가능
역시 좋은진 잘 모르겠다
비싸고 좋은 걸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
그리고 나는 머리를 감을 때
빡빡이임에도 꼭 린스까지 써서 헹궈야 직성이 풀리는데
그것 때문에 샴푸도 린스 겸용이다
그리고 쓰고 있는 스킨 로션도 올인원 제품 하나로 씀
극한의 간략화를 추구하는 편
왜 그러냐면 강박증 때문에
샤워 한 번이 뒤지게 오래 걸리거든
조금이라도 과정을 줄이고 시간을 당겨야
그나마 덜 오래 걸린다
이날 네 시간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
건전지를 안 샀단 걸 깨닫게 됨

목요일
비타 보러 가는 날
이발을 했다
쿠팡으로 바리깡을 주문해서
1~2주 간격으로 직접 이발을 함
이것도 쓰다 보니 요령이 생기는 게 웃김
삭발 의향이 있으신 분은 찾아오시면 밀어드립니다
이날은 오랜 트친을 데리고 갔는데
리츠라는 초면의 메이드께서 자리 안내를 도와주셨다
그리고 얘는 이 리츠님께 정신이 팔려버림
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
예쁜 여자와 함께한다는 원초적 행복을
표정에 그대로 드러냄

그리고 비타와 3주만에 재회...
역시나 계정은 아직도 정지된 상태였고
때문에 트윗으로 올린 방문 일정도 역시나 못 봤댄다
나는 일 년이 넘도록 너를 만나면서도
여전히 너를 만나러 가는 매 순간이 참 떨리고 설레는 듯
뭔가 이날은 유독 표현에 인색했던 것 같다
오랜 친구랑 같이 있어 그런가 더 부끄러웠던 것 같기도
조금 미안했다
그리고 트친의 강한 요청에 따라
리츠님의 라이브를 보기로 함
얘 킹블을 흔드는 제스쳐가
너무 갓반인의 그것이라 좀 웃겼다가
이내 나온, 행복의 극치가 그대로 드러난
날것 그대로의 표정이 더 웃겼다
얘가 이렇게까지 행복해하는 걸 내가 본 적이 있었던가
잘 데려온 듯

그러고 보니 이 다음날이 화이트데이였음
사탕이랑 껌을 받았다
알았으면 뭐라도 좀 갖다 줬을 텐데

이후엔 홍대까지 나온 김에
티원 팬인 트친의 제안에 따라 티원 베이스캠프를 감
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
일전엔 없던 도란 군의 싸인과 저지가 드디어 전시됐다

티원 미니와플
8개가 나오는데 찍는 걸 까먹고 나오자마자 3개 처먹음
맛있었다
그리고 전날의 거래자는 이날도 노쇼를 했다

금요일
대회 봄
역 앞 분식 포차에서 튀김을 사와서 먹었다
그리고 결국 금주를 깨고 맥주를 깠음
금주를 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
이젠... 그게 다 의미 없게 된 것 같아서
절대로 내가 그냥 술을 못 참아서 그런 게 아니고
아무튼 아님
하스 함
이번 달 전설을 아직도 못 찍음
500승 역시 못 찍음
이 플레이를 복기하자면
히드라 전에 속공 저글링으로 밀고자 한 대 치고
핸드에 남은 저글링 마저 낸 뒤 진화장 2장 써서
속공으로 정리 먼저 한 다음 히드라 내고면
남은 1마나로 영능 써서 발견 창 띄워놓은 채로
밧줄 태우는 인성질까지 해주
히드라 12딜 + 필드 19딜 = 31딜 낭낭한 킬각인데
일단 저기서 히드라를 그냥 내버리는 오판을 했고
거기서 진화장 말고 옆의 케리건을 잘못 내는 실수까지
이러니 아직도 전설을 못 가고 있는 듯
아무튼 이겼으니 해프닝이죠
그리고 수요일의 거래자는 또 노쇼를 함
씹새끼